“바다에 가자.”
잠이 든 사람이 없었고 대화를 나누는 사람도 없었다. 우리는 그저 그렇게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새벽을 맞았다. 해는 뜨고, 비현실 속에서도 해는 착실히 뜨고, 나는 네 옆에 너는 내 옆에. 이와이즈미는 묵묵함을 지켰다. 그치지 않을 것 같던 울음은 멎어가고 나 역시 그의 고요함에 취해 또다시 아침을 맞았다.
바다에 가자고 했다. 이와이즈미는 대답하지 않았다. 바다를 가자. 나는 다시 한번 그렇게 말했다. 시트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이와이즈미의 대답을 대신하는 것도 같았으나 그뿐. 말을 덧붙이기엔 기력이 없었다.
피로와는 다른 것. 애초에 이곳에서 내가 느끼는 모든 것들을 과연 설명할 수나 있을까 싶지만 묵직하게 목덜미에서부터 느껴지는 답답함. 혹은 먹먹함. 나는 이 얹혀버린 감정들을 소화할 자신은 없는데도 끝끝내 삼켜냈다. 허기가 두려워 모조리 삼켜냈다. 깊은 공백을 그가 대답으로 채워주기 바라면서도 그의 대답이 들어찰 곳도 없이.
“그럼 사막에 가자.”
그러나 또다시 나였다. 그럼, 사, 막에, 가자. 글자 하나하나 힘을 주어 발음하느라 단어들은 동 떨어진 채 흩어졌다. 사막이라는 단어에, 가자라는 단어에. 그 의미들 속에 울음이 섞여 나올까 부러 그리 발음한 건데 짧은 공간 사이로 도리어 감정이 울컥 넘어온다. 나는 밤새 뜨고 있던 눈을 감아버리고 싶었지만 어둠과 마주할 두려움을 견디지 못해 시트만 있는 힘껏 그러쥐었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서툰 사람이었나 싶고 야속함은 시간을 빗겨나간다. 나는 ‘이와이즈미, 이와이즈미’하고 이름만 부르기 바빴다. 어린아이 투정하고 다를 바 없이.
끓어올라 뚜껑이 들썩거리는 주전자처럼 모든 것이 속에서 요동쳤다. 아니 뜨거운 햇볕에 녹아내리는 아스팔트 바닥이라고 해야 하려나.
아니면 그 위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 그것도 아니라면 혹독한 추위와의 싸움에 지고 말아 순식간에 얼어붙는 강. 꼭대기에서 멈춰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관람차. 심해, 열대우림, 모래사장……. 대상을 끌어들이지 않고 나를 표현하는 법을 잊어가는 것만 같았다.
정의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랬기에 그도 나도 지난 몇 시간을 아무 말 없이 보냈을 테다. 대화를 나누지 않고 각자 혼자 묻고 대답하고를 반복했겠지. 내가 그랬던 것처럼 이와이즈미도 그랬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라는 말로 서로를 묶어버릴 만큼 겁 없는 이들이었으니까. 내가 이렇다 말하면, 사실 말하지 않더라도 그는 나의 마음을 알았고 응해주었다. 다만 눈치챘기 때문이 아니라 그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을 했으니까.
같은, 서로 다르지 않고 하나인. 해가 지고 다시 해가 뜨도록 우리는 똑같이 서로가 없는 서로의 이야기를 완성해갔을 거다. 그러나 결코 같지만은 않을 거라는 불안. 숨 한 번에 마음을 비우고 다시 또 숨 한 번에 결심을 채우고. 나는 이와이즈미가 채워나간 이야기를 상상하지 못한다. 나는 이제 그와 나를 우리라고 부를 자신이 없다.
거르고 걸러 어쩌면 나는 나아갈 출발점에 섰다고 생각했다. 거기에 이와이즈미가 함께 서 있는지 아닌지는 여전히 모르겠으나 어쨌든 거기까지는 왔다고 생각했는데, 흙탕물뿐이다. 여과되지 못하고 그저 바닥 깊이 가라앉아 있던 부스럼이 순식간에 전체를 휩쓸었다. 그가 겨우 대답하지 않았을 뿐인데 모든 것이 뿌옇게 돌아와 버렸다.
나는 이와이즈미의 대답이 절실했고 꼭 무언가 확인받으려는 듯한 몸부림이었지만 그렇다고 그를 돌아보거나 만질 생각은 하지 못했다. 나의 시선은 뚜렷한 초점 없는 어딘가였고 내가 쥔 것은 주름진 시트에 불과했듯이. ‘현실 아닐까 싶어’하고 어물쩍 넘어갔던 대답도 다시 하라 한다면 난 자신이 없었다. 만약 이와이즈미가 자신과 함께하는 이 순간을 정의해보라고 똑같은 물음을 던진다면 나는 무어라 대답할 수 있을까. 현실이라는 게 다 무엇이지?
다시, 정의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고 나는 이제 이름을 발음하는 것마저 두려워 잃어버릴 것만 같았다.
“먼저 씻을게.”
이와이즈미는 나의 손을 잡지 않았다. 비좁은 침대가 그가 일어서자 심하게 들썩였다. 나는 희한하게도 거기서 안식을 찾았다. 손에 힘을 풀고 이미 그는 떠나버린 지 오래인데도 ‘응’ 하고 듣는 이 없는 대답을 흘렸다.
꼬리물기를 하지 못하는 생각은 자꾸만 툭툭 끊어진다. 쪼르륵 배수구로 흘러가는 물소리. 샤워기에서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들은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것일까 아니면 시작되었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일까. 빙빙 도는 철로 위에서 나는 울지도 웃지도 못하고 멈추지도 달리지도 못한 채 그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자꾸 모래가 씹혀.”
“그러니까 스카프 제대로 하라니까.”
“이렇게 모래가 씹히는데.”
딱히 의도를 가지고 뱉은 말은 아니었다. 의미를 갖고 태어난 말이 아니었지만 뱉고 나니 의미가 따라붙는다. 완벽한 문장으로 끝맺음 되지 못한 말은 바람에 휩쓸려 이와이즈미의 반응은 건조했다.
이렇게 모래가 씹히는데, 모든 게 이렇게 선명한데. 햇빛도 모래도 바람도 열기도 느껴지지 않는 게 없는데 참 공허했다. 영원히 몰랐더라면 좋았을까. 과연 나는 언제까지고 이 아슬아슬한 차이를 눈치채지 못하고 곁을 지킬 수 있었을까.
나에게 물음을 던지는 습관이 생겼다. 답을 내리지는 않고, 어쩌면 그러지 못하고 그냥 하염없이 물음만 던진다. 이러면 어땠을까 저러면 어땠을까. 그러다 보면 ‘지금은 어떻지?’ 하고 물음은 현재를 향해 내다 꽂히고 나는 말을 잃는다. 단순한 패턴이었다. 긴 수직선 위에서 나의 점을 어디에 찍어야 할지 모르겠다. ‘여기가 현재야’라고 점 찍는 순간 정해져 버리는 과거와 미래가 두려웠다.
발등을 감쌌다 흐르기를 반복하는 모래. 눈앞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계속되는 이 모랫바닥 뿐인 사막. 사막에 온 지 한참인데 우리는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나는 얼굴을 쪼는 알갱이를 못 견뎌 스카프를 끌어올렸다.
“내가 없는 동안 이와짱은 뭐 했어?”
나를 보는 눈동자. 나는 그 푸름 속에서 대답을 읽으려 걸음을 멈추었다. 눈빛만으로도 서로가 하고 싶은 말을 알던 때가 있었는데. 내가 공을 올리면 언제나 그곳에 그가 있었는데. 나는 그를 읽지 못하고 그만이 나의 멋쩍은 웃음을 읽어서 덤덤히 말을 이어갔다.
“기다렸지.”
햇빛을 가리려는 듯 이와이즈미는 손을 눈가로 가져왔다. 설풋 찡그린 얼굴은 잠시 사막 너머를 내다보나 싶더니 이내 내게로 돌아와 고요한 얼굴을 유지했다.
“그냥 기다렸어. 어떻게 기다렸는지, 뭘 하면서 기다렸는지는 몰라.”
“그게 뭐야. 구구절절한 이야기가 나올까 싶었는데.”
“네가 오기를 기다렸는데, 네가 오기를 기다리기만 한 건 아니니까.”
가자. 이와이즈미는 그렇게 덧붙이며 먼저 돌아섰다. 저벅저벅 앞서가는 그를 눈으로만 따라가다 나는 아예 뒤를 돌아 지나온 길들을 바라보았다. 하늘과 맞닿은 모래산. 다시 고개를 돌리면 또 다른 모래산을 향해 걷는 이와이즈미. 그가 점점 작아지고 있기는 했다. 나는 금세 그를 잃을까 서둘러 뒤를 쫓았고 다시 그의 뒤통수가 가까워지고서야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멈춰있기만 하지는 않았겠지. 우리가 시작도 끝도 모르는데도 쉬지 않고 걷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기다려온 거겠지. 나를 찾겠다는 생각으로.
혼자서 이 사막에 남아있는다는 건 어떤 느낌일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뜬눈으로 동이 트기를 기다리며 헤아리려 했던 것은 이러나저러나 해도 결국은 이곳에 남아있을 이와이즈미여서, 내가 혼자가 되듯 그도 혼자가 되고 우리는 얼마나 무지한 외로움을 경쟁하려 할까. 혼자 이곳에 남겨졌을 때 지표가 되어줄 사람이 없다면 어디를 향해 걸어야 할까. 사막에 남겨질 그와, 사막을 찾아갈 나.
‘목적이 뭔데? 이유가 뭔데?’
더는 걷지 못했다. 땅에서 손이 솟아 내 발목을 움켜쥔 듯 나는 제자리에 멈추어섰다. 걷는 것은 의미 없었다. 숙소에서부터 줄곧 나보다 두어 걸음 앞서 걸으며 지표가 되어주던 그가 없다면 나의 걸음은 사방四方을 잃고 제자리걸음에 그치고 말 텐데. 이렇게도 그 없이 초라한 존재인데 계속해서 나아가 얻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바다에 가자고 했지. 이와이즈미는 대답하지 않았고 나는 다시 한번 물었어 바다를 가자고. 그는 역시 대답하지 않았고 그를 움직이게 했던 건 결국 이 사막이었는데. 여기서 내가 찾는 것은 무엇일까. 그를 앞에 두고 나는 끊임없는 갈증을 호소하며 무엇에 취하려고만 하는 걸까. 이대로 가다간 모호함 속에 익사해버릴 것만 같았다. 생각은 좀처럼 정상적인 회로로 뻗어가지 못하고 나는 판단력을 잃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