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숙소의 요금을 하루에 한 번씩 지불했다. 한 번에 내지그래? 여자가 능숙하게 일본어로 물었다. 나는 모래바람을 막으려 두르고 있던 스카프를 정리하며 잠시 대답을 끌었다. 뭐라 말해야 구질구질해 보이지도 않고도 그녀가 두 번 같은 말을 하지 않도록 적당한 선을 그을 수 있을까.
“얼마나 더 머무르게 될지 몰라서요.”
거기에 그렇구나, 그리 대꾸하는 여자의 얼굴은 조금 뚱해 보였다. 아무래도 그녀는 우리가 머물 기간의 숙소 비용을 한 번에 주길 원했던 것 같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양껏 값을 치른다는 게 풍족한 살림도 아니고 적은 용돈을 어떻게든 모아 떠나온 학생이니 가능할 리가 없다. 그렇다고 대답이 완전 핀트가 나간 대답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우리가 당장 내일 떠나게 될지, 아니면 남은 방학 동안 내내 이곳에서 머무를지는 알 수가 없는 일이니까. 나는 여자의 눈치를 살피며 숙소를 나갈 채비를 했다.
“이제 해 다 져가는데 어디 가?”
여자가 물었다. 나는 앞에 좀…. 발음과 함께 대답을 뭉개버렸다. 차라리 둘둘 감은 스카프를 내어 입을 아예 가려버린다. 그리고는 못 미더운 눈치를 한 그녀를 피해 얼른 숙소를 빠져나왔다. 이와이즈미는 숙소 앞에 뜬금없이 놓인 의자에 앉아있었다. 바람이 불 때면 같이 날아오는 모래에 종종 아플 때가 있어 만반의 준비를 거친 나와는 달리 걔는 처음 봤던 그대로 반소매 셔츠에 바지, 신발. 그게 다였다. 오늘은 옷차림과 행색이 유난히도 가벼워보였다. 이와쨩, 그걸로 괜찮아? 나는 걱정이 되어 물었으나 돌아오는 건 너나 신경 쓰라는 가벼운 구박이었다.
내가 숙소를 나오자 이와이즈미는 조금의 미련도 없이 사막을 향했다. 나는 놓칠세라 얼른 종종걸음으로 다가가 걔 손을 잡고 뒤를 쫓았다. 오늘뿐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종종 이 사막을 걸어 횡단했다. 매일이 제각각이었던 사막을. 그건 아직 동이 터 오르기 전 푸른 사막이었을 적도 있었고, 추위가 가시고 볕이 들기 시작해 새롭게 시작하는 사막이었을 적도, 머리 위에서 뜨거운 열이 녹아내리던 정오의 하얀 사막이었을 적도 있다. 그때마다 나는 이 사막이 매번 달라 생경하기 짝이 없었다.
일전에 내가 알던 사막은 어떠했는가. 그저 모래 봉우리가 끝도 없이 이어져 있는 곳. 그렇게 건조하고 지루한 단어로 나열할 수 있을 만큼 단순했다. 그리고 지금 너와 함께 거니는 사막은 매번 모습을 달리했다. 새벽은 정말 추웠다. 해가 뜨기 직전이 가장 어둡다는 것을 그때야 실감할 수 있었다. 그때의 사막은 빛이 있는데도 앞이 잘 보이지 않았으며, 챙겨온 옷들을 여러 겹 겹쳐 꽤 단단히 껴입었는데도 살갗에 소름이 올랐다. 한낮의 사막은 찐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더웠으나 동시에 태양이 타올라 아픈 피부 때문에 옷을 껴입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혓바닥 위에 올라간 모래알이 살갗을 아프게 파고드는 것처럼, 작은 감각 하나까지 구체화되어 사막이 되었다. 결국 수도 없이 이곳을 오간 나는 이제 사막을 그 무엇으로 정의해야 할지 감조차 오지가 않아서, 이제 사막을 너라고 정의하기로 했다. 내가 너에게 붙인 언어는 셀 수도 없이 많으니 그 안에 있는 몇 개를 떼어 여기에 붙이면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사막은 네가 되었다.
“이와쨩.”
잠시 멈춰 허리를 숙여 무릎을 짚고 앞서가는 너를 향해 입을 벌렸다. 그 건조한 부름에 네가 사막과 함께 돌아본다. 끈적하게 죽어가는 태양에 물들어 피를 흘리는 것처럼 시뻘건 사막위였다. 그 잔인한 경관에 네가 녹아내린 것만 같아서, 나는 순간 목이 메어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눈을 뗄 수가 없어 고개만 치켜든 채로 침을 꿀꺽 삼켰다. 입안에 있던 모래알들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 따가웠다.
“같이 가.”
나는 하려던 말 대신에 앞서가는 너에게 기다려 달라 말했다. 오늘 건너는 사막은 힘이 들었다. 가는 길마다 유난히도 발이 푹푹 빠져서 한 걸음을 떼는 것이 벅찼다. 모래가 가득해 텁텁하고 아픈 바람이 얼굴을 때리고 지나 살갗이 아팠다. 태양에 물들어 새빨갛게 변한 시야가 시렸다. 내가 왜 이렇게나 힘든 곳을 지나야 하지. 걷는 내내 괜히 억울해 눈물이 나려 했다. 그래서 돌아가자, 그리 말하려 부른 건데. 그런데 앞선 너는 매끄럽게 사막을 유영하고 있었다. 숙소에 누워 긴 밤을 지새는 동안 시들어가던 너는 이곳이 마치 너의 요람인 것처럼 생기가 돌았다. 그래서 나는 차마 돌아가자 말하지 못하고 앞서가던 너를 붙잡고 나를 조금만 기다려 달라, 나를 두고 가지 말아 달라 말하기로 하였다. 모래알이 들어 껄끄럽고 아픈 목울대를 울렸다.
함께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