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이즈미와 함께 하는 시간을 붙들어두고 싶었다.
당장, 숨을 쉬고 있는 지금.
모두가 잠든 시간은 고요하다. 방 바깥에서 바람에 모래가 쓸리는 소리가 났다. 간혹 모래 몇 알이 창문을 두드리기도 했다. 다행인 것은 입 안에서 모래알이 씹히지 않았다는 것 정도.
낮 동안 이와이즈미와 함께 돌아다닐 때는 습관적으로 손목시계를 찼다. 돌아다니면서 시각을 확인할 일도 없었거니와, 숙소로 돌아와서도 굳이 손목시계 안을 들여다볼 일은 더욱 없었다. 제 역할을 다 하지 못한 손목시계는 방 안, 작은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침대와 책상 사이는 어느 정도 떨어져 있었으나, 손목시계의 초침 소리라고는 믿을 수 없게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이와이즈미와 보내는 시간이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초침은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전지가 다 된 것처럼 아슬아슬하게 까딱이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시계는 다시 째깍거렸다. 고요를 넘어선 적막. 초침 소리는 적막에 잠겨 있던 나를 질질 끌고 나왔다. 다시 잠들기는 글렀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시선을 옮겼다. 바깥이 어두워지면서 내렸던 블라인드에 흰색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흰색 대신 옅은 푸른색이 그 자리를 채웠다.
그러고 보니, 이와이즈미와 함께 하면서 손목시계의 시각을 정말로, 한 번도 확인한 적이 없었던가? 나는 짧은 의문을 품었다.
당연하게도 초침 소리는 멎지 않았다. 그나마, 팔 안에 감겨드는 체온이 나를 위로해 주었다. 새근거리는 숨소리는 다시 잠들라는 것처럼 나를 다시 잠으로 끌어당기고 있었지만, 한 번 잠에서 깬 이상 다시 잠들 수가 없었다. 내 품 안에서 잠든 이와이즈미가 깰까 싶어 초침이 규칙적으로 째깍거리는 소리까지도 멈추고 싶었다. 그 소리가 크게 들렸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 순간을 더 붙잡고 있고 싶기 때문일까. 분명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인데도 어느 하나 확실한 것이 없었다. 다만, 단언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지금 이 순간이 끝없이 이어지길 바랐다는 것이다.
시간이 눈에 보였으면 했다. 눈에 보이고, 손에 쥘 수 있을 만큼 형태가 있었으면 했다. 상당한 욕심이지만 나는 시간을 손에 가득 쥐고 싶었다. 욕망인지 욕구인지 욕심인지. 아무래도 좋았다. 시간이 흐르는 것이 멈추더라도 나는, 그리고 내 옆의 이와이즈미는 멈춘 시간 속에서 멈춰있지 않기를 바랐다. 언젠가 봤던 영화가 떠올랐다. 찰나의 시간을 영원처럼 쓰는 사람이 주인공인 영화였다. 시간을 멈추고 하고 싶은 일을 잔뜩 하는 사람. 시간을 지배한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모습. 그 영화를 본 직후의 나는, 주인공이 멈춘 시간 속에서 유영遊泳하는 장면들을 그저 재미있다고만 여겼다. 모두가 멈추어 있었지만 주인공은 예외였다. 시간이 멈추면서 멍한 눈빛을 하고 앞이든 옆이든, 어딘가를 바라보는 사람들 앞에서 손을 한 번 휙 젓는다든가. 같이 걸어가는 사람들 사이를 슬쩍 벌려내며 그 사이로 지나간다든가.
나에게도 그런 능력이 있었다면, 하고 바랐다. 시간을 멈춰두고 이와이즈미를 오롯이 느낄 생각이었다. 점자를 매만지는 것처럼 모든 신경을 손끝에 쏟아 부어서 네 피부, 눈꺼풀, 눈가, 콧등, 입매, 그 모든 것을 기억할 생각이었다. 잠들어 있을 때의 네 표정을, 나는 사랑스럽다는 말로 정의하기로 했다. 다물린 입술이 씰룩이며 움직이는 것을 손끝으로 느끼며 너를 달래고, 내려앉은 눈꺼풀이 올라가며 녹음을 담은 눈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취하고 싶었다. 시간을 멈춘 공간 속에서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이와이즈미와 나, 단 둘뿐이라면 좋을 텐데. 그렇게 촉감으로나마 네가 이 세상에 실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네가 이 세상에 발을 딛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끗이 없애버리는 일은 다시는 없을 테지만. 그리고 네 존재를 지우고 어딘가로 휙 떠나는 일은 두 번은 없을 테지만, 믿고 싶었다. 나 또한 그럴 생각이었다. 너를 두고 떠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서로를 붙들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중략)
나는 이와이즈미가 나를 명명해주기를, 그리고 정의해주기를 바랐다. 내가 누구야, 이와쨩? 하고 물을 때면 이와이즈미는, 내가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게 좋아하기 시작했던 그 얼굴로 인상을 썼다. 더위라도 먹었냐? 여기가 아무리 더워도 그렇지. 그리고 그거 묻는 게 몇 번째야? 질린다. 입술을 비죽 내밀며 투덜대는 모습에 웃음이 터져 나올 때도 있었다. 내가 그 표정을 좋아하는 줄도 모르고. 어서 대답을 해 달라고 재촉을 하자 이와이즈미는 못내 입을 열었다.
“뭐 하러 네가 누군지 물어 봐. 당연한 것도 확인 받아야 하냐? 참 잘했어요 같은 도장 찍어 주는 것처럼?”
내가 주위에 이와이즈미 하지메가 누구냐고 물었을 때의 주변 사람들의 표정을 네가 보았다면 이런 말을 하지도 않을 텐데. 절친하다는 말이 손색없을 마츠카와와 하나마키인데도 두 사람이 이와이즈미 하지메라는 이름을 발음하는 것조차도 어색해하는 모습을 네가 보았어야 했는데. 사람들의 반응을 다시 떠올리니 순간적으로 울컥한 마음이 들었다. 나도 너와 마찬가지로 입술이 비죽 나올 것만 같았지만, 나는 애써 표정 관리를 했다.
“내 존재를 확실히 하고 싶어서 그래.”
“존재? 더위 먹은 것 맞네. 내가 여기 있고 네 녀석이 여기 있는데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할 이유가 뭐야, 대체.”
“그래도. 얼른. 내가 누구야, 이와쨩?”
이 말에 이와이즈미의 좁혀진 미간이 꿈틀대고는 전보다 더 좁아졌다. 표정이 험악해졌다며 늘 주고받던 가벼운 말처럼 말을 툭 뱉기도 이와이즈미가 말했다. 오이카와 토오루. 이름이 불리는 그 순간 심장을 꽉 채우며 차오르는 뿌듯함에 나는 몸을 떨었다. 응, 맞아. 난 오이카와 토오루지. 너는 이와이즈미 하지메고. 그리고 나도 이와이즈미가 한 것처럼 똑같이 이와이즈미의 이름을 불렀다. 입술과 혀가 움직이며 소리를 내는 것이 이리도 뿌듯할 수가 없었다.
(수정 과정을 거치며 실제 회지에 들어가는 내용과는 일부 다른 점이 있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