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개의 다른 발목을 간질이는 것은 같은 파도다.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아까의 여행자들과 지프는 넓게 펼쳐진 백사장 혹은 바다 어디에도 없이 길게 난 타이어 자국 뿐이다. 인간이 이룩한 조형물 하나 없이 사위가 적막했다. 만족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이와쨩, 여기가 어디야?"
허리를 숙여 손으로 바닷물을 휘젓는 감촉을 즐기던 이와이즈미가 고개를 들며 인상을 찌푸렸다. 나는 들고 있던 운동화를 저 멀리 백사장으로 내던져버렸다. 방해다.
"뭐야, 네가 찾아 왔잖아. 길치냐?"
"오이카와 씨는 잘생겼으니까 길치여도 된답니다."
"재수 없는 게 길도 못 찾고."
"그래도 좋아하잖아, 이와쨩은."
이미 잘 안다고 여기던 개념이 아주 새롭고 신선하게 다가온다. 여행지의 마법이다. 나는 허리를 펴는 이와이즈미의 양 볼을 손바닥으로 장난치듯 문대며 실없이 웃었다.
"싫어해? 그러면 오이카와 씨 슬퍼."
"전혀 슬픈 표정이 아닌데, 너."
"내적 슬픔이야."
주장하자 픽 웃는다. 볼이 뭉개져 못생겼다.
"안 놔? 손, 손 한 번 더럽게 지저분하네. 아씨, 이걸 팰 수도 없고."
"왜? 왜 못 패는데?"
이와이즈미가 푹 한숨을 쉬었다. 그마저도 볼따귀가 손에 붙잡혀 답답해보였다. 조물락거리기 시작한 손을 떨쳐낸 이와이즈미가 대답한다.
"이건 네가 건너왔어야 하는 바다야."
발을 담근 물은 얕았다. 하지만 깊숙한 저 멀리도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는 법이다. 나는 이와이즈미의 먼 시선을 따라 고개를 향했다. 수면 위쪽으로 섬도 갈매기도 없이 파도 소리만 적막했다. 나는 선착장을 지나오지 않았다. 어쩌면 시력이 닿지 않는 곳에 있을지도 모르지만 해안선에는 통통배 같은 것이 정박할 법한 작은 부두 하나 없었다.
"오이카와 씨는 기차랑 버스랑 탔는데."
"우리도 이 근처에서 다시 봤잖아."
"여기가 거기야?"
"거기야."
"거기는 어딘데?"
"저 멀리 어디쯤."
이와이즈미는 말 그대로 저 멀리 어딘가를 가리켰다. 모래, 모래, 해안선을 따라 모래와 사구를 지나 어디쯤에는 사막의 입구 우리가 얼굴을 더듬던 계단이 있다는 뜻이다. 아주 멀어보이지는 않았다. 그렇게나 오래 달렸는데. 어쩌면 추측한 대로, 지프를 타고 둥근 사막을 한 바퀴 돌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귀를 기울였지만 사람의 소음은 없었다.
"우리가 가는 바다는 더 먼 줄 알았어."
"더 멀리 가려면 준비가 필요해."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미야기 출신이지만 나는 바다와 그닥 연이 없었다. 기껏해야 파라솔을 설치하고 아이스박스 안으로 모래가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해서 뚜껑을 여는 것이 한계였다. 이와이즈미의 말을 듣다 보면 마치 우리의 한계가 둥근 사막의 가장자리 바다에 불과한 것처럼 느껴졌다.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짐짓 모른 척 목소리를 높였다.
"이와쨩, 갈 때는 배로 갈래?"
둘의 한계는 하나의 한계보다 멀다. 둘은 괜찮다. 나 너머의 우리라면 더 먼 바다로 나갈 의향이 있었다. 이와이즈미는 팔을 휘저으며 점점 더 깊숙한 물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팔을 버둥대며 따랐다. 파도 속에서는 그래야만 균형을 잡을 수 있었다.
"돌아가려고?"
"으응. 이와쨩도 찾았으니까."
바다를 건너면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디도 도피처가 아닌 것 같았다. 머물러 안정을 찾고 싶었지만 우리는 지프 운전자와도 소통할 수 없는 이방인이다. 여행, 혹은 돌아가는 것만이 선택지였다. 우리는 기꺼이 함께 달아날 것이었지만 도태보다는 그 편이 비교할 수 없을 만치 나았다.
이와이즈미는 바지가 젖는 것도 아랑곳 않았다. 실제 닿은 곳보다 더 높은 곳까지 젖어들었다. 물살에 휘말린 옷자락이 몸에 달라붙었다. 사막은 경이롭다. 바다는 아름답다. 여행은 견문을 넓힌다.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문득 물었다.
"더 가보고 싶은 곳이라도 있어?"
그제야 허벅지까지 잠긴 이와이즈미가 돌아본다. 좋아하는 입매다. 하지만 나는 곧게 앙다물린 입매가 나를 향해 벌어지는 순간을 가장 사랑했다. 그 애는 의도치 않게 사랑스럽다. 그런 점이 가장 사랑스러웠다. 입술이 아주 여상스러운 태도로 그런다.
"딱히. 네가 가고 싶으면 나도 가지."
사랑스러운 것은 느닷없이 찾아든다. 까무잡잡하게 그을린 몰골이 그랬다. 걷어 올린 팔뚝은 탄탄하고 쭉 뻗은 목선이 부드럽다. 이와이즈미는 당당하다가도 가끔 움츠러들었다. 대개, 어쩌면 항상 내 앞이었다. 어쩌면 그런 연약한 버드나무 같은 점에서 비롯했을 런지도 몰랐다. 능력이 닿는 한계치까지 사랑스러워 보일 웃음을 베어물며 나는 상상했다. 네게도 내가 사랑스러워보였으면 한다.
"나는 이와쨩이 정말로 좋아."
"뭐야, 갑자기."
길을 잃었을 때 이정표 삼을 수 있는 사람의 가치에 대해 생각한다. 그 애가 뒤를 돌아보고 나로 인해 길을 확신한다면 그로 인해 책정될 나의 가치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벅찼다. 이와이즈미가 수면을 한참 주시했다.
“오이카와 씨가 사라진다면 찾아와 줄래?”
그 순간 이와이즈미가 그대로 가라앉았다. 고작 배꼽까지의 수심에 다다른 시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