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익! 날카로운 호각 소리가 경기를 댕겅, 토막 냈다. 터질 것처럼 팽창하던 현실에 별 안듯 찬물이 끼얹어진다. 열이 몰린 뇌가 팽팽 돌자 귓바퀴가 달아올랐다. 어째서 멈추는 거지? 한창 열중하던 무대에서 아무렇게나 내동댕이쳐진 것처럼 마냥 억울하다.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경기에 끌어내려 진 부당함에 아우성쳤다. 가다듬는 호흡, 오른발로 시작하는 도약. 허공에 머무는 몹시 느린 순간과 팔 근육이 수축되는 빠듯하고 익숙한 느낌. 모두가 나를 보고 있었다. 블로커부터 리베로까지, 단 한명도 빠짐없이 내 손을 주시하고 있었다. 혼자 떠 있는 조용한 세상 속에, 오직 서브를 한다는 생각만이 있었다. 다음 순간, 강렬한 통각이 손바닥을 홧홧하게 태운다. 물속에 담그던 머리를 꺼낸 것처럼 환호성과 야유가 다시 쏟아져 나온다. 아무도 내가 모는 이 흐름을 끊을 수 없다. 그래야 했는데.
타임아웃이 불릴 때면 나는 눈을 감고 이 순간을 끊임없이 되풀이했다. 현실과 맞닿은 감각을 죽이고 머릿속의 시뮬레이션만을 집중해서, 하나의 목표만을 떠올렸다. 이 촘촘히 짜인 집중 속에서 나를 건져내는 건 언제나 어깨를 짚은 이와이즈미의 손이었다. 그 손과 닿고 나서야 눈을 뜨고 귀를 열면, 이와이즈미는 언제나 거칠지만 상냥한 손길로 일으켜 세웠다. 이제 시간이 되었다고, 다시 네가 수만 번 반추하며 고대하던 현실을 디딜 차례라고.
새삼스럽게 굴어보자면, 언제나 정신을 차리라고 흔들어주는 건 그 애였다. 단단하게 박인 굳은살은 경기의 흥분으로 평소보다도 체온이 높았다. 평생을 흘려보내도 잊지 못할 그 순간, 그 감각. 내 손보다도 익숙한 이와이즈미의 손.
미야기를 벗어난 지금도 촉각은 강렬하게 소리를 높인다. 이곳에 바로 네가 존재하고 있다. 주전자의 둥근 가장자리를 매만지니, 뜨겁게 달아오른 표면에 손끝이 아려왔다. 이상하게도 나는 이와이즈미를 마주 안았던 밤 이후로 종종 감각을 시험하는 버릇이 생겼다. 이와이즈미의 까슬한 눈썹을 반대 방향으로 쓰다듬거나, 속눈썹을 매만지며 장난치다가 명치를 정통으로 얻어맞았다. 심장이 몽글몽글해지는 사소한 감각이나 당장 눈앞이 새까매지는 저릿한 통증이 퍼지면 진짜구나, 염원이 아니구나, 하고 확신을 가질 수 있다. 우리는 사막을 딛고 서 있었다. 두근거리는 심장박동이 끝없는 적막을 메우고, 달큼하고 짭조름한 체향에 숨이 막혔다. 무엇보다도 그날, 품을 꽉 채우는 이와이즈미의 감각은 잊을 수가 없다. 느릿느릿 걸었는데도 우리 둘은 가슴팍을 잔뜩 부풀렸다. 뜨겁고, 살아 숨쉬고 있었다. 더운 숨이 분명 이와이즈미였다. 나는 내 손이 두려움이 아니라 안도감에 덜덜 떨린다는 것을 알았다. 악몽에서 헐떡이며 깨어나 매달리듯이, 나는 이와이즈미를 간절하게도 껴안았다.
재회의 기억은 묵직해서, 시시때때로 들어 올리는 주제에 다시 놓아둘 때는 천천히 조심스럽게 놓아야 한다. 마치 무거운 돌이나 체중계처럼, 함부로 다루면 손을 다쳐버리고 말 거다. 나는 기억을 천천히 놓아주며 스스로 암시했다. 이와이즈미는 내 곁에 있다. 허상도, 기억 나부랭이도 아닌 나의 이와이즈미가 함께 생을 공유하고 있다. 그걸 끊임없이 곱씹으며 지금 이 순간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었다. 잠시만 방심하면 현실감각이 나비 떼처럼 날아가 버리는 와중에도 이와이즈미는 언제나처럼 꿋꿋하게 나를 일으켜 세웠다. 따듯한 물줄기, 이 빠진 머그컵과 쌉싸름한 커피 향처럼, 그애는 일상의 타래를 손쉽게 끌고 들어온다.
보글보글 물이 끓는 소리와 함께 주전자 뚜껑이 달그락거린다. 늦잠을 자면 꼭 커피를 내려야 한다고, 이름 모를 문학에서 읽은 적이 있다. 지금처럼 커튼이 하늘거리며 늘어지고, 귀를 기울이면 햇살 소리도 들을 수 있을 듯한 샛노란 오후다. 나는 나른하게 눈을 깜빡거리며 물을 끓였다. 먼 타지라도 인스턴트커피 정도는 구할 수 있었다.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컵을 무니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툭 튀어나온다.
“용케 그걸 먹고 앉아 있다.”
정말이지 이토록 험악한 목소리가, 오이카와 씨는 왜 이렇게나 좋을까나.
(수정 과정을 거치며 실제 회지에 들어가는 내용과는 일부 다른 점이 있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