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이즈미 하지메. 너는 나의 모든 것이었다. 나의 세계는 너의 것이었으며, 그것은 변치 않을 영원이었다. 해가 지면 다시 해가 뜨고 겨울이 지나면 다시 봄이 오듯이, 숨을 쉬는 것만큼이나 당연하면서도 성스러운, 너는 나의 이데아였다. 우리의 매일은 가을 하늘보다 푸르렀고, 그 어떤 꽃보다 향기로웠고 따뜻한 햇살에 데워진 이불만큼이나 사랑스러웠으며 모든 것을 감싸 안을 듯 포근했다. 우리의 시간은 늘 함께 흘렀고 흐르는 시간을 아쉬워하지도 않았다. 너는 내 존재의 이유였다. 네가 지는 곳이 바로 내가 지는 곳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오늘따라 이와쨩이 늦네.”
“?”
“별일이야. 늦잠이라도 자는 건가?”
우리는 늘 함께였다. 정확히는 내가 태어나고 나니 네 옆이었다는 게 더 맞는 말이지만. 태어났을 때부터 너는 나의 빛이었다. 내 가족이자, 형이자, 동생이자, 연인이었다. 우리는 모든 것을 함께 했다. 등하교는 물론이고, 어디에서도 늘 서로의 곁을 지켰다. 집이 가깝다는 이유보다도 너와 나는 한 짝이니까, 그 이유가 전부였고 당연했다.
“이와…? 누구?”
너는 내 이데아였다. 변치 않을 편안한 안식처.
“새삼스럽게 왜 그래, 맛키. 이와이즈미…. 맛층! 맛키 표정 이상해!”
“이와이즈미?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오이카와.”
“맛층까지 왜 그래? 하나도 재미없어. 오이카와씨 놀리려는 거라면 실패입니다.”
“놀리는 거 아냐. 아직 잠 덜 깼냐? 정신 차려, 인마!”
“그래.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꿈이라도 꾼 거 아냐?”
“하아? 둘 다 왜 그래? 어제도 같이 하교 했잖아.”
“…….”
“…….”
“반응이 왜들 그래? 이런 장난 진짜 재미없는 거 알지?”
“…….”
“아아, 어제 늦게 잠들더니 분명 늦잠 자는 게 분명해! 오이카와씨가 깨워주지 않으면 곤란하다니까~”
두 사람이 연기대상 후보라면 누구에게 트로피를 건네주어야 할지 우열을 가리기 힘든 표정 연기였지만 속을 리가 없었다. 이와이즈미를 정말로 모를 리가 없잖아. 네가 돌아오면 잔뜩 혼내달라고 해야지. 무심하게 들리는 신호음을 반주 삼아 흥얼거리기 시작했을 때쯤
“여보세요?”
낯선 목소리가
“이와…?”
“누구세요?”
나의 평정심을 깨부수기 시작했다.
(중략)
겨우 마음을 다잡고 펼친 교과서에 눈이 갈 리가 없었다. 분명 글자를 읽고 있는데 눈으로 읽히는 건 한 글자도 없었다. 자주 초첨이 나가고 머리가 멍했다. 오늘따라 집중이 안 되네. 작게 중얼거리며 놓여진 연필을 돌렸다가,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쉬는 시간에 이와쨩한테 우유 빵 사달라고 졸라야지.”
널 떠올리기만 해도 웃음이 비실비실 새어 나왔다. 2교시에는 분명 돌아와 있을 거야. 내가 있는 곳이 네가 있을 곳이니까. 꽤나 길고 지루한 시간을 네게 할 말로 가득 채운 뒤 당연하게도 네 교실 뒷문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열 발자국만 걸어가면 1교시에 푹 늘어져 잠든 네 뒤통수가 보이겠지. 어딘가 고장난 사람처럼 자꾸만 새어 나오는 웃음을 숨김없이 드러낸 채 네게 쏟아낼 잔소리 수백여 가지를 중얼거리며 뒷문을 열었지만 늘 보여야 할 자리에서도, 반 안에서도 네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안녕, 미유쨩. 이와쨩은 심부름 갔어?”
“어?”
“이와… 음, 저 자리 말야.”
맨 왼쪽 줄 앞에서 네 번째 자리, 네가 늘 삐딱하게 가방을 걸어두고 앉아있는 곳을 가리키며 물었지만 하나같이 모른다는 표정이었다.
“저… 오이카와군… 거긴 야스군의 자리인데….”
“야스군?”
“응. 야스모토군.”
처음 듣는 낯선 이름. 이와이즈미의 반에 뻔질나게 드나들면서 단 한 번도 듣지 못한 이름이었다. 조금 긴장한 듯 뻗어지는 손가락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이와이즈미의 자리에 앉아 수다를 떨고 있는 낯선 남자아이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늘 삐뚤게 걸려있는 스포츠 백이 아닌 정갈한 백팩이 걸려있는 어색한 책상. 저긴 이와이즈미의 자리인데. 지울 수 없는 기시감이 스산하게 발끝을 스쳐 지나갔다. 그럴 리가 없잖아.
“있지, 저 자리에 앉은 애가 누구라고?”
“응?”
“저 자리. 누구 자리냐고.”
“야, 야스군이라니까?”
“장난하지 마. 이와이즈미의 자리잖아.”
“오, 오이카와군 무섭게 왜 그래?”
“너야말로 뭐야. 이와이즈미 하지메. 이와이즈미의 자리잖아. 저런 녀석 본 적도 없어.”
“이와이즈미라니… 저긴 쭉 야스군의 자리였다구…. 오이카와 진짜 무서워!”
꽤 큰 소리를 주축으로 반 전체의 공기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조금 전 부실에서도 느꼈던 매서운 공기, 두려움에 떠는 눈빛과 수군거림. 그 어디에도 장난이라고 말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온몸을 따갑게 파고드는 어둠을 따라 어지러움을 울컥 토해냈다. 제일 먼저 지운 것은 사람들의 표정이었다. 그런 표정 하지 마, 내가 이상한 것처럼. 그런 얼굴로 날 보지 마. 네가 없는 세상은 완전한 밀실 그 자체다. 평온했던 속이 뒤집어지고 한순간에 취기가 오르듯 어지러움이 바닥을 들고 일어났다. 그 어떤 말도 듣고 싶지 않았다. 입을 열면 전부 다 너는 원래부터 없었던 사람이라고 말할 것 같아서, 이대로 눈과 귀가 멀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할 수 있는 혼신의 힘을 다해 걸어와 책상에 머리를 기댔다. 장난이 아니었다. 이와이즈미 하지메가 자신의 기억 속에만 남은 채 완전하게 사라졌다. 아무도 너를 기억하지 못한다. 영화에서나 보던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꿈인가? 볼을 꼬집어봐도 생생하게 아픈걸 보니 꿈은 아닌 모양이었다. 이와이즈미가 없다. 이와이즈미 하지메가. 몇 번이나 그 말을 되새기며 직시한 현실이 끔찍해 도로 잊어버리는 쪽을 택했다. 네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리가 없잖아.
이와이즈미 하지메. 나의 영원한 이데아.
“하하. 거짓말이지? 나 놀리려고 그러는 거지?”
네가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어찌나 치밀하던지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너를 기억하는 게 이상할 만큼 너는 깨끗하게 사라졌다. 단 한 번도 떨어본 적 없는 손을 떨어가며 누르는 자판은 엉망이었지만 핸드폰 창이 도배되도록 늘어트린 단어는 전부 꿈과, 고통에 관련된 것뿐이었다. 통증을 느끼는 꿈이 없을 리가 없어. 네가 이 세상에 없을 리가 없어. 꿈. 꿈이야. 이건 다 지독한 악몽이야. 하지만 꿈이 아니라면? 급속도로 숨이 막혀왔다. 유유히 헤엄치던 어항 밖으로 내던져 져 너를 갈망하는 금붕어가 된 것 같았다. 아니, 그보다 끔찍했다. 네가 누구냐고 되묻는 말과 네 존재를 모른다는 사람들의 표정은 진즉에 머릿속에서 도려낸 후였다. 거짓말. 온통 거짓인 세상. 지독한 악몽. 꿈이라면 빨리 깨길 바랐다. 꿈이라고, 지독한 악몽이었다고, 꿈에서 깨어나면 제일 먼저 너에게 달려가 네 심장 소리를 확인하고 싶었다.
도무지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억지로 귀를 닫고, 스치는 소리를 전부 지나친 채 무작정 내달렸다. 네가 있을 만한 곳을 전부 되짚으며 목이 터져라 네 이름을 외쳐도 그 누구 하나 거짓말이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함께 점심을 먹었던 옥상에 있을까? 그게 아니라면 체육관? 부실? 운동장? 양호실? 그것도 아니라면 조금 전 들렀던 교실 맨 왼쪽, 앞에서 네 번째 자리에 보란 듯이 엎드려 있을까? 수업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도 무시한 채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도록 뛰고 또 뛰었지만, 없었다. 당연하다는 듯 네 자리를 꿰차고 앉은 사람이 미웠다. 거긴 이와쨩의 자리야. 목이 쉴 정도로 소리를 지르며 뛰어가 네 자리를 대신한 사람을 밀쳐냈다. 누구인지 구별도 가지 않는 사람들이 자신을 뜯어말릴 때까지, 아니 말리는 와중에도 그 행동을 반복했다. 발악에 가까웠다.
강제로 교실에 끌려 들어왔지만 머릿속에 다른 내용이 들어올 리가 없었다. 헤집어 놓은 책상, 헝클어진 머리, 울기 직전 바짝 말라버린 두 눈동자, 아슬아슬하게 걸상에 매달린 책가방까지. 모든 것이 엉망이었다. 아무도 너를 기억하지 못했다. 오히려 너를 기억하는 내가 이상한 사람이 돼 버렸다. 24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건만 함께 웃고 즐겁게 떠들었던 네 존재를 순식간에 지워버린 사람들이 미웠다. 네가 없는, 오롯이 너를 기억하지만 네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세상은 지옥이었다. 지옥 불구덩이에 몸을 던져도 이보다 고통스럽진 않을 것 같았다.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다. 너를 잃은 상실감이 오감마저 앗아갔다.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자리에 앉아 칠판을 바라봤지만 눈에 담기는 것은 없었다. 아직까지도 버리지 못한 미련에 숨어있을 너를 생각하며 웃었다가, 너를 기억하지 못하는 현실에 우는 것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어느 것도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없었다. 이름 일곱 자는 또렷하게 남아있는데, 부름에 대답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이와이즈미….”
이 꿈속의 세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고작 네 이름을 부르는 것뿐이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나마저도 너를 잊어버릴 것 같아서, 부를 수 있을 만큼 네 이름을 부르고 또 부를 수밖에 없었다. 춥지도 않은데 춥고, 다리가 떨렸다. 네가 없으면 어떡하지, 이 세상에 네가 없으면
난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
(수정 과정을 거치며 실제 회지에 들어가는 내용과는 일부 다른 점이 있을 수 있습니다.)